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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살 때부터 정말 꾸준히 번번히 읽고 있는 책.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사례와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따라가다보면
어느샌가 읽는 것 자체로도 명상이 되어주는 책이다
나의 삶의 질서가 유튜브 등 외적질서(알고리즘)가 만연해질 때,
몸과 마음은 자연스럽게 무기력해진다.
나의 감각들과 나의 재능들에게 필요한 질서를 통해 안정감과 성장을 만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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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우란 행위에 깊게 몰입하여 시간의 흐름, 공간,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 대한 생각까지도 잊어버리게 될 때를 일컫는 심리적 상태이다.
- 청소년들은 혼자있을때,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도 플로우를 느끼기가 힘들다는 것, 플로우는 조용히 혼자만의 연구에 몰입할 때나 봉사할때, 위험감수할때, 법망을 교묘히 피해나갈때와 같은 상황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
- 플로우는 도전적인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때 따라오는 내적인 보상이다.
- 칙센트미하이교수는 창의성을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완전한 구현으로 정의하고 있다.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인 활동을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게 되면 그 시간에 우리들은 플로우를 경험한다. 그 결과 우리들의 삶은 창의적으로 변화해 갈 수 있다.
- 인간은 언제 제일 행복할까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최근 심리학의 지식과 방법을 적용해 보는 것이다.
- 행복이란 것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나의 발견이다. 돈이나 권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순간에 충분히 몰입하고 있을 때만 행복은 오는 것이다.
- 플로우란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을 정도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푹 빠져있는 상태를 말한다. 경험 자체가 매우 즐겁기 때문에 어지간한 고생도 감내하면서 그 행위를 하게 되는 상태이다.
- 최적경험이라는 것은 매 순간 의식선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고, 노력과 창의성을 통해 이를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어떻게 의식이 활동하고, 어떻게 의식을 통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부터 시작할 것이다.(2장)
- 내적 경험의 최적상태는 의식이 질서를 가지고 움직일 때다. 목표외의 다른 것들은 잠시 잊어버리게 된다.
- 내적인 경험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것과, 삶의 매순간을 즐길 수 있는 능력만이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극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 도대체 왜 이럴까? 물질적 번영을 누리고 있음에도 우리들음 왜 자꾸만 더 무기력해지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 경험의 내용을 증진시키는 방법들에 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별 발전이 없기 때문이다.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는 것은 본능. 좋은 느낌이 오면 그 느낌이 자연스럽고 자발적으로 생겨났다면, 그것은 옳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전적인 힘을 아무런 의심없이 무조건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은 의식에 대한 통제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은 그의 심리적 심리적 에너지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우리 스스로 무기력해지고 만다. (유전적 프로그램에 복종하는..) 인간은 본능적 욕구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이 욕구를 조작하는 남들에게 당하기 쉽다.
-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회가 제공하는 보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이를 위해서 우리가 통제할수 있는 보상으로 대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의 목표를 만들라는 것이다. 자신을 사회적 통제로부터 해방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순간순간에 주어지는 보상을 발견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다. 그럼 사회의 통제로부터 벗어날수 있을 것이다. 본인의 힘을 다시 찾을 수 있다.
- 언젠가는 좋은일이 일어나겠지 위안하며 매일 따분히 하루를 보낼 필요도 없다. 손에 닿을듯 말듯한 목표를 위해서 영원히 노력하는 대신 삶이 주는 참 보상을 수확하기 시작한다.
- 우리는 몸이 원하는 것으로부터 독립적이 되어야하며, 마음속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고통과 쾌락은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며 그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현란한 광고에 침을 흘리고, 직장 상사의 찡그린 얼굴이 우리의 하루를 망치도록 방치하는 한 우리는 스스로의 경험을 결정할 수 없다.
- 의식의 해방을 가져다주는 현명함이라는 지식은 본질적으로 누적되지 않는다. 공식화되지 못한다. 암기해서 단순히 적용할 수 없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값지게 얻어야만 하는 것이다. 의식을 통제한다는 것은 감정ㅇ의 몰입과 의지를 필요로 한다. 앎이 아니다. 행동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작곡가가 수많은 연습을 거쳐야 좋은 곡을 쓸수 있는것처럼 말이다. 이 지식은 문화와 시간에 따라서 달라진다.